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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영화 시동 (자립, 책임, 회복)

by luire 2025. 4. 23.

영화 《시동》(2019)은 기존의 청춘 영화들이 보여주던 통속적인 클리셰를 탈피해, 더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시선으로 청춘의 내면을 조명한 작품이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무작정 가출한 주인공 고택일이 다양한 인물들과의 관계 속에서 점차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유쾌하고도 따뜻하게 그려내며, 성장, 자립, 책임, 그리고 관계의 회복이라는 핵심 키워드를 던진다. 이 글에서는 《시동》이라는 영화가 어떻게 청춘의 본질을 드러내며, 어떤 방식으로 성장의 의미를 새롭게 재정의하는지 깊이 있게 분석해 본다.

영화 시동 포스터

도망에서 시작된 여정, 그리고 책임을 배우기까지

고택일(박정민)은 전형적인 ‘반항아’로 등장한다. 학교도, 집도, 엄마도 모두 지긋지긋하다.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충동에 휩싸인 그는 결국 학교를 자퇴하고 집을 뛰쳐나간다. 친구 우상필(정해인)과 함께 세상으로 도망치듯 나선 그는 자유를 꿈꾸지만, 현실은 그의 기대를 무참히 깨트린다.

택일은 우연히 들어간 작은 중국집 ‘장풍반점’에서 단발머리 주방장 ‘거석이형(마동석)’을 만난다. 거석이형은 무뚝뚝하고 정체불명에 가까운 인물이지만, 묘하게 따뜻한 감성과 철학을 지녔다. 택일은 처음에는 이 낯선 공간과 사람들에 거부감을 느끼지만, 점차 그곳에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책임지는 삶을 배워간다.

처음으로 돈을 벌고, 실수하며, 다시 관계를 쌓아가며 택일은 ‘도망이 아닌 정면 돌파’를 택하게 된다. 이는 청춘에게 가장 중요한 성장의 시그널이다. 도망치는 것만으로는 어른이 될 수 없다. 《시동》은 바로 이 지점에서, 성장이라는 것이 단순히 시간의 흐름이 아닌 ‘자기 삶을 책임지는 태도’ 임을 말해준다.

관계 속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자립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성장의 단계를 ‘혼자서’ 해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택일이 성장하는 데에는 주변 인물들의 존재가 결정적이다. 거석이형은 외면적으로는 괴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사람을 따뜻하게 품어줄 줄 아는 어른이다. 그는 택일에게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기다려주고, 실수할 자유를 준다.

이 과정은 관객에게도 ‘진짜 어른’의 역할이 무엇인지 묻는다. 청춘이 실수할 수 있는 자유, 그러나 그 실수를 통해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이끄는 존재. 《시동》은 바로 이런 관계 속에서 자립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준다. 혼자서 세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믿을 수 있는 누군가의 존재를 통해 다시 일어서는 경험, 그것이 바로 영화가 말하는 자립의 본질이다.

우상필은 택일과는 다른 길을 택한다. 빠른 돈을 벌고 싶었던 그는 사채업 세계에 발을 들인다. 그가 점차 어두운 세계에 잠식되어 가는 모습을 통해 영화는 ‘성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택일은 느리지만 진심 어린 노동을 선택하고, 상필은 빠른 결과를 좇는다. 하지만 결국 누구의 선택이 더 가치 있었는지는, 결과보다 과정 속에서 드러난다.

청춘의 본질: 실패, 좌절, 그리고 회복

《시동》은 단순히 한 소년의 탈출기나 성공기가 아니다. 이 영화는 ‘실패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중심에 둔다. 택일은 집을 떠나면서도 불안하고, 장풍반점에서도 사고를 치고, 상필과도 갈등한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실패와 실수 속에서 점차 단단해지고, 어른이 되어간다.

특히, 영화 후반부에서 엄마 정혜(염정아)와의 관계 회복은 택일의 성장의 결정적 장면이다.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여겼던 엄마가 사실은 가장 큰 버팀목이었음을 깨달으며, 그는 진심 어린 사과와 포옹으로 관계를 다시 이어간다. 이 장면은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단순히 혈연이 아니라, 서로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또한, 거석이형이라는 인물의 존재는 사회가 정의한 ‘정상’의 기준에 대한 반기를 들고 있다. 거석이형은 단발머리, 무표정, 무뚝뚝한 말투 등 모든 면에서 전형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 인간적이며, 택일에게 ‘사람답게 사는 법’을 가르쳐준다. 이 캐릭터를 통해 영화는 ‘정상성’이라는 사회적 틀을 넘어,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의 가치를 말한다.

《시동》은 성장과 자립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유쾌하고 경쾌하게 풀어낸 청춘 영화의 진화형이다. 기존 청춘 영화들이 이상적이거나 극단적인 성공과 실패에 집중했다면, 이 영화는 더 평범한 현실 속에서, 아주 작고 사소한 선택들이 어떻게 사람을 성장하게 만드는지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주인공 고택일은 단순히 철없는 반항아가 아니라, 실패를 통해 책임을 배우고, 관계를 통해 회복을 경험하며, 마침내 스스로의 인생에 ‘시동’을 걸 줄 아는 청년으로 변모한다. 이 영화는 단순히 한 청년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오늘도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모든 청춘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조금 늦어도 괜찮아. 넘어져도 괜찮아. 언젠가 너만의 시동을 걸고, 다시 달릴 용기를 갖는 게 중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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