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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걸캅스 리뷰 (사회비판, 여성형사, 사회성)

by luire 2025. 5. 4.

영화 《걸캅스》(2019)는 디지털 성범죄라는 민감하고 현실적인 문제를 중심으로, 두 여성 형사가 정의를 실현해 가는 과정을 경쾌하면서도 통쾌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단순한 액션 코미디를 넘어서 사회 비판적 메시지와 여성 주체의 활약을 담고 있어, 여성 서사 중심의 한국 영화 중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받습니다. 본 리뷰에서는 《걸캅스》의 서사 구조, 사회비판적 시선, 그리고 여성 영웅으로서의 캐릭터 해석까지 깊이 있게 분석해 보겠습니다.

영화 `걸캅스` 포스터

디지털 성범죄의 현실과 사회비판

《걸캅스》는 2010년대 후반 한국 사회를 뒤흔든 ‘불법 촬영물 유포’ 사건을 영화적 모티브로 삼습니다. 영화 속에서 범인들은 클럽에서 여성에게 약물을 타 마시게 한 뒤, 정신을 잃은 피해자들을 촬영해 그 영상을 유포하는 악질적인 디지털 성범죄를 저지릅니다. 그 과정은 실제 사회에서 문제 되었던 ‘텔레그램 N 번 방’ 사태를 연상시킬 만큼 현실적이고 구체적입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공권력의 무기력함과 조직 내부의 관성입니다. 피해자가 경찰서에 도움을 요청해도, 담당자들은 사건을 축소하거나 책임을 회피합니다. 이처럼 시스템이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하고, 오히려 방관하거나 묵살하는 현실을 영화는 날카롭게 꼬집습니다.

《걸캅스》는 단지 범인을 처벌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시스템을 통하지 않고도 정의를 실현하려는 ‘비공식 정의 구현’을 중심으로 사건을 전개합니다. 이는 사회적 절망에 대한 저항이며, 동시에 공권력의 책임 회피에 대한 대안적 시선입니다. 즉, 영화는 단순히 성범죄를 고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정의가 어떻게 무시당하고, 어떻게 다시 세워질 수 있는가’를 묻는 사회비판적 작품입니다.

여성 형사의 활약과 영웅 서사의 재구성

기존 한국 액션 장르에서 형사는 대부분 남성 중심 캐릭터였습니다. 그러나 《걸캅스》는 여성 형사를 전면에 내세우며, 여성 주체가 폭력의 대상이 아닌 해결자로 자리 잡는 이야기를 펼칩니다. 박미영(라미란 분)과 조지혜(이성경 분)는 과거의 상처, 조직 내 소외, 사회적 편견을 딛고, 자발적인 정의 실현자로 나섭니다.

특히 박미영은 과거 전설의 형사였지만, 결혼과 육아 이후 ‘민원실’이라는 비활동 공간에 묶인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내면의 형사 본능을 끝내 억누르지 않고, 조지혜와 함께 조직 바깥에서 사건을 해결합니다. 이 과정은 여성 영웅 서사의 현대적 재해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성은 보호받는 존재가 아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동적인 존재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영화는 ‘힘센 여성’이라는 고정관념에 갇히지 않습니다. 라미란의 연기는 현실적인 중년 여성으로서의 공감과 동시에 강한 의지를 표현해 내며, ‘가능한 여성 영웅’의 모델을 제시합니다. 조지혜는 날것의 분노와 열정을 지닌 인물로, 정의감과 행동력이 결합된 새로운 형사상을 제시합니다.

두 사람은 단순한 협력 관계를 넘어서, 연대와 공감의 주체로 거듭납니다. 여성 간의 관계를 ‘질투’나 ‘경쟁’이 아닌 ‘협력과 성장’으로 풀어낸 점은 이 작품이 지닌 중요한 서사적 가치입니다.

오락성과 사회성이 공존하는 장르 실험

《걸캅스》는 디지털 성범죄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액션과 코미디 요소를 적절히 조화시켜 관객에게 거부감 없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성공합니다. 라미란과 이성경은 장르의 톤을 무겁게 끌지 않으면서도, 피해자의 고통이나 사회의 무관심을 진지하게 그려냅니다.

특히 민원실의 동료 ‘장미’(최수영 분), 민원실장(염혜란 분) 등의 캐릭터는 단순한 조력자가 아닌, 여성들 간의 연대 구조를 강화시키는 인물로 배치됩니다. 이들이 보여주는 유머와 현실감은 영화의 오락성을 견고하게 만들어줍니다.

또한 범죄 조직에 맞서는 장면에서는, 클럽 잠입 수사, SNS 해킹, 서버 추적 등의 현대적 수사 방식이 등장해 스릴을 더합니다. 이는 기존 형사물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기술과 세대 감각을 접목시킨 장르 실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화 후반, 비공식 수사팀이 범인을 일망타진하는 장면은 전형적인 ‘영웅 서사’의 쾌감을 제공하지만, 그 방식은 철저히 여성적 시선에서 재구성됩니다. 이는 단순히 여성 캐릭터를 주연으로 내세운 것이 아니라, ‘영웅 서사의 패러다임 자체를 뒤집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습니다.

《걸캅스》는 경찰 조직의 무능함과 사회적 무관심 속에서, ‘개인의 용기’와 ‘여성 연대’만이 실질적인 정의를 실현할 수 있음을 말합니다. 이는 단순히 한 범죄 해결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정의 구현 방식에 대한 근본적 질문입니다.

이 영화는 여성 형사를 전면에 세우면서도, 강요된 영웅상이 아닌 현실적이고 공감 가는 인간을 그려냅니다. 박미영과 조지혜는 완벽하지 않지만, 그렇기에 더욱 진정성 있게 다가옵니다.

지금도 우리는 수많은 디지털 성범죄, 사회적 침묵, 제도의 한계 속에 살고 있습니다. 《걸캅스》는 묻습니다. “당신은 언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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